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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 일본어

노포(시니세)와 일본의 와(和) 사상과의 연관성

by 휴식맨 202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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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을 아는가?

578년에 창립되어 무려 1400년이 넘는 기업이 있다.

바로 일본의 곤고구미(金剛組)다.

곤고구미(金剛組)는 고건축물 전문 기업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일본에는 오래된 기업이 참 많다.

전 세계의 100년 이상 된 기업 중 40%, 세계 최장수 기업 10개 중 9개가 일본에 있다.

참으로 놀랍다.

후지산 근처 야마나시현에 있는 게이운칸(慶雲館)이라는 여관은 705년에 지어졌다. 1300년도 넘게 무려 52대에 걸쳐서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하니, 놀라움을 넘어 경악의 수준이다.

일본에 여행을 가보면 시니세, 즉 '노포'가 많다. 100년쯤 되는 식당은 부지기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 100년 이상 된 가게나 기업이 무려 27,300개나 된다고 한다. 그중 200년 이상 된 가게는 3,937개라고 한다. 놀랍다. 그런데 그중 500년 이상된 가게가 147개라고 한다. 허걱.

더욱 놀라운 것은 1000년 이상된 가게 와 기업이 무려 21개라고 한다.

1000년을 이어온다고. 날이 새면 간판이 바뀔 정도로 빠른 우리나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일본은 왜 이리도 오래된 가게가 많을까?

한 번 살펴본다.

우동가게 노포
우동가게 노포

■일본에 노포가 많은 이유

①일본인들은 전통과 신의를 우선시 한다.

 (나름 인정한다.)

②일본인들은 한 가지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장인정신과 기술을 높이 평가한다.

 (나름 인정한다.)

③일본인들에게는 1400년간 일본을 지배해온 와(和)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일본에 노포가 많은 이유 중에 가장 강력한 이유가 바로 '와(和)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와(和)는 일본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은 일본 음식을  '와쇼쿠(和食)'라고 하며, 일본 옷을 '와푸쿠(和服)', 일본 과자를 '와가시(和菓子)'라고 한다. 와(和)는 이렇듯 일본을 의미하고 대표한다. 우리가 이미 한자를 배워서 알고 있듯이 和는 '조화(調和)'나 화목(和睦) 등에 쓰이는 글자이며, '사이좋게 지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섬나라인 일본은 이 '사이좋게 지낸다'가 굉장히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세상의 중심에 천황이 있고, 천황의 주위에는 천황을 보좌하는 귀족이 있다. 귀족의 주위에는 사무라이가 있고, 그 둘레로는 농공상(農工商)과 천민이 있다.

앞서 말한 '사이좋게 지낸다'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왕은 왕의 일을, 귀족은 귀족의 일을, 사무라이는 사무라이의 일을, 그리고 농공상과 천민은 그들의 일을 해야 한다. 그 선을 넘으면 '사이'가 깨지고, '사이'가 깨지면 평화가 깨지고 사회는 위험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왕과 귀족은 일반 백성의 계급과 일을 명확하게 정해줘야 했다. 선을 넘으려는 자,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는 자이고, 그런 자들을 제거하는 역할은 사무라이가 했다.

이런 '와(和) 사상'을 만든 이가 고대국가 시절의 쇼토쿠태자이며, 이런 '와 사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에도 시대를 보자.

중앙에는 천황을 모시는 실권자인 '쇼군'이 있고, 지방에는 각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인 '다이묘'들이 있었다. '번'이라고 하는 옛 행정구역은 다이묘가 지배하는 행정구역이다. 그 시절 일본인들에게는 이주의 자유가 없었다. 번에서 태어나고 번에서 죽어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었다. 남의 영역을 넘본다는 것은 다툼을 만드는 것이고 다툼이 일어나면 곧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내가 그 시절의 일본인이었다고 했을 때, 만약 내 아버지의 우동가게를 물려받은 내가 장사 수완이 좋아 옆 마을에 가게를 하나 더 내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고 평화를 깨뜨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 된다. 분수를 어긴 나는 처벌을 받게 되는데, 대개는 마을에서 나를 비롯한 나의 가족 전체가 투명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 시쳇말로 '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다른 마을로도 갈 수 없기 때문에 사는 내내 괴로움을 겪어야 한다.

따라서 우동이 맛이 있든 없든, 내가 장사를 잘 하든 못하든 주어진 자리에서만 우동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인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내게 주어진 위치에서, 내게 알맞다고 정해진 일을 한다'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수백 년 된 음식점에 가보면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놀랄 때가 많다. 장사가 잘 돼도 처음 그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한 곳에서 오래 장사를 하면 단골손님이 생겨서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망하지 않으니 100년, 200년, 이어가는 것이다. 대가 끊이지만 않는다면 1000년도 이어가는 것이 바로 일본인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일본 사회를 보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일본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와(和) 사상이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답답하기도 하다.

모든 게 빠른 한국과는 참 대조적이다.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냥,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 자료

위에 언급된 게이운칸(慶雲館)은 2020년 6월 해산했다. 한때 연매출이 10억엔에 달했지만 2016년부터 가격 경쟁에 밀려 매출이 급감하면서 53대째에서 결국 멈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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