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 박희홍

불공평에 찌든 우리네 삶에
은혜로운 낮과 밤이 공평한 시간
오늘, 공평의 싹을 틔워
농사짓듯 정성을 다한다면
씀씀이도 남는 것도
공평해지려나
예기치 못한 꽃샘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려도
너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춥지도 덥지도 않게
언제나 공평할 수 있으려나
아이들은 큰 떡을
어른은 작두콩처럼 작은 떡을
나이만큼 먹던
나이떡과 봄나물에
봄 졸음이 고개를 끄덕이네
춘분님께 부치는 연서
/ 이석기

사랑하는 춘분님 안녕하세요?
딱 1년 만에 오심이 반갑습니다.
우리 민초님들은
이 누리에 당신님 오시기를
학수고대 하였다고요
지난해 인정 없는 혹한이에게
엄청나게 시달림 당했기 때문이지요.
당신님 오시기 전에
어제까지도
가진 몽니 협잡꾼들
연일이다 시피 한 비와 바람
잿빛 구름은 햇빛을 막고
온 누리에 화신 옴을
그렇게도 훼방했어요.
오늘 반갑게 오시니
뛸 듯이 설레이며
우리네 모두는 기쁜 마음이네요
매력 없이 바람 불고 춥고 긴긴밤
점심 들고 돌아보면
금방 해넘이 와버리는
날들은 이제는 물러가고
하지 날까지 3개월간
든든한 믿음으로
살게 됨이 보람이고
행복한 나날이겠지요.
춘분님 추워서 고생했던
나목들에게 희망의 새싹
파릇파릇 틔워주세요
선비님들의 이미지
한국인의 바른 기개
매화 활짝 피워주시고
진달래. 명자 꽃. 라일락
한국에 계시는 동안 예쁘게
피워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당신님을 진정 사랑합니다.
춘분, 그분이 오시다
/ 정민기

춘분, 그분이 오시다
들녘에는 봄기운 전하느라 분주하다
아무리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해도
그녀와 나 사이만 할까
기어이 우릴 떼어놓으려고
낮의 길이가 더 길어진다
이제 봄보리를 갈아야 하는데
무너진 내 마음 담도 고치고
들나물도 캐어 먹어야 하는데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춘분,
그분이 오시다
춘분의 밤
/ 이은규

비로소 봄을 나누다
눈 감았다 뜨면 꽃 한송이 피어나듯
마음을 나눴던 것과 같이
혹은 그보다 더한 그 무엇을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
과연 나누는 일 사이좋게 애틋하다 애틋하게 함부로
밤에 피어나기를 즐겨했던 꽃, 몸들
문득 종이 한 장을 절반으로 나눠
편지를 주고받던 그 풍경을 기억이라 부르자
지나간 문장을 읽을 때 차오르는 무엇을
구슬 같은 눈물이라고 부르지 말자
텅 빈 동공에 풍경이 차오를고 있으므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을
이별이라 부를 때
중력을 이겨내며 힘껏 갈라섬을
작별이라 부르지 말자, 모쪼록
저기 안 보이는 커다란 손이
낮과 밤의 경계를 붉게 가르듯
모든 우리라는 이름은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
알고 있지 하나의 선을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악이 필요했다는 걸
깊어지는 것으로 말하는 그늘진 얼굴처럼
꽃의 온몸에 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제 한낮의 그 고운 구슬들이
밤의 어둠 아래로 알알이 흩어졌다
달빛에 부서지는 기억, 기억들
저만치 연착되는 안부대신
종종걸음으로 도착한 꽃샘추위를 맞이하자
때로 잊고, 그보다 더 자주 기억하며
춘분 풍경
/ 신창홍

춘분에 얽힌
전해오는 이야기 반갑게
축복처럼 봄비 넉넉하게 내리더니
시샘하듯 바람 차갑다
어제만 해도
아토피 피부같이 건조한 들판
푸석했던 대지에 윤기가 나고
흙먼지 날리더 거친 도로에도
갈증이 가신 듯 생기가 돌고 있다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야산의
높이 치솟은 송전탑과
하늘에 그물을 친 듯
양쪽으로 갈라진 전기 줄엔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널려있다.
문밖에 다다른 봄의 채취들
도시를 벗어나 느껴보는
비 개인 아침의 평범한 풍경들은
꽃들이 아니어도 황홀하고
푸르름이 아니어도 신선하다
이제는 어디에 있어도
싱그럽게 느껴지는 풍경들
비와 바람과 햇빛과 작은 풍경들
어느 하나 기쁨 아닌 것이 없다
꽃과 사랑이야 말할 나위 있으랴
춘분
/ 정희정

햇볕이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고목 등줄기 가지 사이로
미풍이 지나가고
온실의 창가에서
꽃봉오리 작은 기침을 한다.
기나긴 시간 견딘 혜풍(惠風)
천 개의 지층 지나고
수천 년 역사가 물길따라 건너서
봄의 허공에서 몸을 푼다.
춘분
/ 류병구

풍신을 믿은 게 패착이었다
오죽 데데했으면
지금이 어느 땐데 몽니를 부리는가
낙오된 패잔 추위가
눈꺼풀 열리다 만 여린 꽃봉오리
매섭게 해코지하는 고약한 심술
꽃샘이 기 셀수록
두엄 내음 더욱 짙어가는
애벌갈이 들밭은
볕을 켜고 산성 비 앙금 걸러
햇 봄을 버물린다
살점 죄 떨어져 나간 동짓달 찬바람이
소맷부리로 기어든다
소스라친 가슴팍이 펑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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