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윤꽃님
나는 야누스
반은 감성에 살고 반은 이성에 산다
누가 이중의 얼굴을 탓하는가
순백의 물질, 눈 밑엔 언제나
질척한 진흙의 마음이 있는 것을
나는 야누스
반은 꿈에 살고 반은 현실에 산다
하지만 언제나 승리하는 건 현실
리얼리즘이 로맨티시즘을 능가하는가
자아가 본능을 억압하는 것을
나는 우화 속의 여우
그저 저 높이 매달린 잘 익은 포도송이를
시큼할 거라고 자위하며 지나가는
한 마리 여우
겨울과 봄의 길목에서
꿈인 그대여!
철학도 이성도 사그라지는
그대의 품속이여!
힘과 물질이 대단치 않은 곳,
개인과 자유의지가 피어나는
그대의 입속이여!
그대는 나의 아버지이자 아들
그대는 나의 자궁이자 혀
그대는 나의 과거이자 미래
어쩌면 이것이
그대가 눈부신 이유인지도 모르는 것을
일월은
배귀선
날 저무는 뜨락에 앉아
사라진 날들을 그리워말자
설레이던 영혼의 젊은 날은
열두 달 바람의 끝을 잡고
별이 되었으니
그 별과 만나는 날
한바탕 지난꿈 이야기하자
일월은
축복 속에 새로운 다짐을 싹 틔우고
눈부신 비상을 꿈꾸며 푸른 문을 연다
새로운 하늘을 연다
우리가 가야 할 길에
폭우와 해일이 밀려와도
허물 벗고 새로이 태어나는
소리 없는 함성이다
뜨거운 새벽이다
1월
이외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 있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한밤중에 바람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몸부림치고
절망의 수풀들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망명지 아무리 아픈 진실도
아직 꽃이 되지 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해빙기는 어디쯤에 있을까
얼음 밑으로 소리죽여 흐르는 불면의 강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시간은 날카로운 파편으로 추억을 살해한다
모래바람 서걱거리는 황무지 얼마나 더 걸어야
내가 심은 감성의 낱말들 해맑은 풀꽃으로 피어날까
오랜 폭설 끝에 하늘은 이마를 드러내고 나무들 결빙된 햇빛의 미립자를 털어내며 일어선다
백색의 풍경 속으로 날아가는 새 한마리
눈부시다
1월의 해와 하늘
안재동
수십 억 년쯤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세월
날마다 변함없이 뜨고 지는 해
해는 똑같은 해인데
12월에 떠오르는 해는
낡아 보이고
1월에 떠오르는 해는
새로워 보인다
사랑과 미움
적과 동지
아름다움과 추함
빠름과 느림
배부름과 배고픔
편안함과 불편함
강인함과 나약함...
본질을 같으나
느낌에 따라 달라 보이는 그 무엇들
세상에 너무 많은
1월 어느 날의 청명한 하늘
12월 어느 날에 청명했던
바로 그 하늘이 아닌.
'마음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본립도생(本立道生), 기본을 생각하다 (1) | 2025.01.24 |
---|---|
이찌고 이찌에? 일기일회, 무슨 의미일까? (1) | 2025.01.24 |
호모 루덴스, 삶의 주인이 되어 '놀이하는 인간'으로 살자 (0) | 2024.12.26 |
내가 좋아하는 시, 나태주 시인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0) | 2024.12.24 |
좋은 시 241204 / '사랑의 물리학' 외 (0) | 2024.12.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