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화이트 크리스마스
- 나태주
크리스마스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이 시는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중년의 남자가 읽었으면 싶다.
아내를 생각하는 시인의 담백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사랑은 세월과 함께 깊어지는 거구나.
2024년에 나태주 시인은 아내를 위한 헌정 시집 '울지 마라 아내여'에는 더욱 절절한 아내사랑이 드러난다.
"세상에 와 나에게 가장 큰 행운은 내가 당신의 남편이 된 일입니다."
와우, 내가 평소에 아내에게 한 말을 이렇게 글로...!
2024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연말을 맞아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고맙다는 말을 전하련다.
그런데 조금 고민이다.
나태주 시인보다 더 멋진 말을 할 수 있을까?
반응형
'마음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월의 시 모음 2501 윤꽃님 외 (0) | 2025.01.02 |
---|---|
호모 루덴스, 삶의 주인이 되어 '놀이하는 인간'으로 살자 (0) | 2024.12.26 |
좋은 시 241204 / '사랑의 물리학' 외 (0) | 2024.12.03 |
눈 관련 시 모음, 첫눈 오는 날에 적어보다 (1) | 2024.11.27 |
12월의 시 모음 241125 (1) | 2024.11.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