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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

11월의 시모음 3

by 휴식맨 202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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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1월이다.

빠르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이틀 뒤에 오는 11월을 미워할 수는 없어 이렇게, 시들을 읊는다.

■11월의 좋은 시들 모음

11월의 나무처럼

 

이해인

양평 카페 수수의 정원
양평 카페 수수의 정원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 만큼은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 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중년의 가슴에 11월이 오면

 

이채

양평 카페 수수에서 바라본 풍경 경춘선
양평 카페 수수에서 바라본 풍경 경춘선

청춘의 푸른 잎도 지고 나면 낙엽이라

애당초 만물엔 정함이 없다 해도

사람이 사람인 까닭에

나, 이렇게 늙어감이 쓸쓸하노라

 

어느 하루도 소용없는 날 없었건만

이제 와 여기 앉았거늘

바람은 웬 말이 드리도 많으냐

천 년을 불고 가도 지칠 줄을 모르네

 

보란 듯이 이룬 것은 없어도

열심히 산다고 살았다

가시밭길은 살펴 가며

어두운 길은 밝혀가며

때로는 갈림길에서

두려움과 외로움에 잠 없는 밤이 많아

 

하고많은 세상일도 웃고 나면 그만이라

착하게 살고 싶었다

늙지 않은 산처럼

늙지 않은 물처럼

늙지 않은 별처럼

 

아, 나 이렇게 늙어갈 줄 몰랐노라

 

 

 

11월의 시

 

이외수

남이섬에서 바라본 강
남이섬에서 바라본 강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을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11월의 편지

 

목필균

남이섬 안에서 만난 단풍
남이섬 안에서 만난 단풍

지구가 뜨거워졌는지

내가 뜨거워졌는지

아직 단풍이 곱다

 

갈색 플라타너스 너른 잎새에

네 모습이 서있고

 

11월이 되고서도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꼬깃꼬깃 접힌 채

쓸려간다

 

모니터에 네 전령처럼

개미 한 마리

속없이 배회하는 밤이 깊다

 

네가 그립다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밤을 밝힌다

11월 그 어느날에

 

 

 

11월

 

배한봉

남이섬
남이섬

늑골 뼈와 뼈 사이에서 나뭇잎 지는 소리 들린다

햇빛이 유리창을 잘라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정오

파닥거리는 심장 아래서 누군가 휘파람 불며 낙엽을 밟고 간다

늑골 뼈로 이루어진 가로수 사이 길

그 사람 뒷모습이 침묵 속에서 태어난 둥근 통증 같다

누군가 주먹을 내지른 듯 아픈 명치에서 파랗게 하늘이 흔들린다

 

 

 

11월

 

오세영

두물머리에서 바라본 풍경
두물머리에서 바라본 풍경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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