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건강

단풍 시 모음

by 휴식맨 2024. 11. 11.
반응형

짧은 가을을 깨달은 걸까. 빠르게 물드는 잎들.

단풍은 '기승전'이 없이 곧바로 '결'로 치닫고 있다.

때문에 내 마음도 바빠졌다.

첵, 첵. 첵.

빠르지 않는 손가락을 나름 부지런히 움직인다.

단풍이 지기 전에 단풍에 관한 시를 정리하는 것이다.

키보드 위에서 마음만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단풍에 관한 시 모음

단풍과 나

 

- 정연복

단풍이 물들어 가는 공원길
단풍이 물들어 가는 공원길

차츰차츰 곱게

단풍 물드는 잎들을

 

멀뚱멀뚱

쳐다보지만 말자.

 

저 많은 잎들은 빠짐없이

생의 절정으로 가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기죽고 슬퍼하지 말자.

 

한 하늘 하나의 태양 아래

또 같은 비바람 찬이슬 맞으며

 

지금껏 하루하루 살아온

나무와 나의 삶인 것을.

 

이제 고운 빛 띠어 가는

나무의 한 생이라면

 

내 가슴 내 영혼 또한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 가리.

 

 

 

단풍

 

- 이상국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나무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나무

나무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잎잎이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봄에 겨우 만났는데

가을에 헤어져야 하다니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단풍이 물드는 이유

 

- 한승수

파란 하늘 아래 나무들이 물들기 시작하다
파란 하늘 아래 나무들이 물들기 시작하다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울어대던 매미들도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높아진 하늘만큼

잠자리의 날개짓이 힘겹다

 

붉게 타오르며

하루의 대미를 장식하는 노을처럼

진정한 아름다움은

소멸의 순간 빛을 발하는가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가장 아름다운 몸짓으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남은 날들을 채워 가야 한다

 

잎을 떨구기 전

단풍이 곱게 물드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늦가을 단풍

 

- 김경숙

정자와 갈대, 어느 가을 오후
정자와 갈대, 어느 가을 오후

하얀 햇볕 아래

나무들 잠재우고

 

무슨 말이 남았는지

뒤척이는 붉은 가슴

 

저물어 가는 산사

곱게 물들이며

 

떨치지 못해 붙잡은

마지막 남은 미련

 

 

 

단풍 숲속을 가며

 

- 오세영

파란 가을 하늘과 그 아래 물들기 시작하는 나무들
파란 가을 하늘과 그 아래 물들기 시작하는 나무들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옆을 보면

화들짝 붉히는 낯익은 얼굴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뒤를 보면

또 노오랗게 흘기는 그 고운 눈빛

가을 산 어스름 숲속을 간다

붉게 물든 단풍 속을 호올로 간다

산은 산으로 말을 하고

나무는 나무로 말하는데

소리가 아니면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하루해는

설키만 하다

찬 서리 내려

산은 불현듯 침묵을 걷고

화려하게 천자만홍 터뜨리는데

무어라 말씀하셨나

어느덧 하얗게 센 반백의

귀머거리

아직도 봄 꿈꾸는 반백의

철딱서니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