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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

짧은 시 모음 / 241124

by 휴식맨 202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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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도 긴 여운을 주는 시들이 있다.

오늘은 그런 시들을 모았다.

짧았지만 내 가슴을 크게, 그리고 길게 여운을 남긴 시들이다.

■짧은 시, 긴 호흡으로 감상하자

조용한 일

 

김사인

땅 위에 낙엽 하나가 떨어져 있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그날

 

곽효환

울고 있는 여자

 

그날,  텔레비젼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정지용

구름 사이에 있는 하얀 달

 

눈 머금은 구름 새로

힌달이 흐르고,

 

처마에 서린 탱자나무가 흐르고,

 

외로운 촉불이, 물새의 보금자리가 흐르고......

 

표범 껍질에 호젓하이 쌓이여

나는 이밤, '적막한 홍수'를 누어 건늬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외로워하는 여자가 서 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기도실

 

강현덕

슬픔에 잠긴 여자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이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이병기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은 어느 게요.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사막

 

오르텅스 블루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여자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으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서시

 

이정록

흠집이 난 나무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갈대

 

신경림

노란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그 사람에게

 

신동엽

스쳐 지나가는 남자와 여자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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