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를 보면
강세화
겨울나무를 보면
일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한 생애를 마주한 듯 하다.
나이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고
섭섭해하지 않는
풍모를 본다.
집착을 버리고
욕망을 버리고
간소한 마음은
얼마나 편안할까?
노염타지 않고
미안하지 않게
짐 벗은 모양은
또 얼마나 가뿐할까?
겨울나무를 보면
옹졸하게 욕하고
서둘러 분개한 것이
무안해진다.
겨울이 오면
김병훈
내게
가장 좋은 장갑은
너의 예쁜 손이다.
겨울 단상에 젖어
나상국
하루하루 짧아지는
하늘빛 길이만큼
점점 더 짧아지는 보폭으로
종종 걸음질 친다
땀나도록 토해내던 열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빛바랜 낙엽을 떨어낸
나무들이 나목으로 거리에 서서
이제 싸늘하게 식어버린
바람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새의 깃털같이
가볍게 떨어져 내리는
순백의 날들이 수북이 쌓이는
계절의 강가에 머물며
수런대는 갈대의 이야기를
밤새워 듣는다
어느 오후
먼 산 그림자를 밀어내고
설화 피어난 창가에 서성이며
찻잔을 맴도는
짧은 생각의
나이테 하나 긋고 있다
겨울 차창
나태주
너의 생각 가슴에 안으면
겨울도 봄이다
웃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겨울도 꽃이 핀다
어쩌면 좋으냐
이러한 거짓말
이러한 거짓말이 아직도
나에게 유효하고
좋기만 한 걸
지금은 이른 아침
청주 가는 길
차창 가에 자욱한 겨울 안개
안개 뒤에 옷 벗은
겨울나무들
왜 오늘따라 겨울안개와
겨울나무가 저토록 정답고
가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냐
겨울 숲의 은유
나호열
살아남기 위하여
단 하나 남은
잎마저 떨구어 내는
나무들이 무섭다.
저 혼신의 몸짓을 감싸는 차디찬 허공
슬픔을 잊기 위해서
큰 슬픔을 안아 들이는
눈물 없이는
봄을 기다릴 수 없다
눈 위에 쓰는 겨울시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겨울 사랑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눈 덮인 겨울 들길을 가노라면
용혜원
눈 덮인 겨울 들길을
기차를 타고 가노라면
눈 안에 그리움이 가득하다
눈이 내리면
이렇듯 온 세상을 다 덮거늘
그대는 왜 그리움으로만
내 가슴에 가득한가
이 차가운 바람 불어대는 겨울에
눈이 온 땅에 내리듯
그대 내 품에 가득하도록
쏟아져 내려라
눈 덮인 겨울 들길이
찬사가 터지도록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 내 품에 사랑으로
쏟아져 내려라
그대 눈처럼 내게로 쏟아져 내리면
얼마나 행복할까
겨울사랑
유안진
나 혼자서 정리하고
나 혼자서 용서하고
얼었다가 풀렸다가
한겨울도 깊어 갑니다
비바람이건 눈보라이건
나 혼자의 미친 짓입니다.
겨울예감
이외수
"끝없는 시간의 강물을 건너고 건너
이제 나는 한 마리 잠자리로 태어났건만
그대는 지금 어느 윤회의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느냐
무서리가 내리고
국화꽃이 시들고
문득 겨울 예감이 살갗을 적시면
그때는 내 목숨도 다하나니
몇만 년 윤회를 거듭해도
나는 그대 생각 하나로 눈물겨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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