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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정씨(慶州鄭氏) 양경공파(良景公派) 이야기/경주 정씨 항렬표 첨부

by 휴식맨 202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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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경주 정씨(慶州鄭氏)이며, 파(派)는 양경공파(良景公派)다.

양경공파(良景公派) 72세손.

그중에 내가 있다.

 

그 처음은 이러하다.

■경주 정씨(慶州鄭氏) 이야기

경주 정씨의 시조는 지백호(智伯虎)다.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신라 건국 공신이다. 그 공을 인정받아 개국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다.

유리왕 9년에 '낙랑후(樂浪侯)'로 봉해졌으며, 정(鄭)씨 성을 하사 받았다. 이때 성을 하사 받은 사람은 지백호 할아버지의 5세손인 정동충(鄭東沖)이었다.

정씨 시조 신라개국공신 낙랑후 지백호 묘
정씨 시조 신라개국공신 낙랑후 지백호 묘

경주 정씨 시조 지백호의 묘는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백운대 마을에 있다.

무덤 주위에는 신성한 묘역임을 표시하기 위해서 돌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봉분 둘레에는 인신수수상으로 새겨진 12지신상의 호석이 배치되어 있다. 

 

현재 경주 정씨는 문헌공파(文獻公派), 양경공파(良景公派), 월성위파(月城尉派), 평장공파(平章公派)로 나뉜다.

파가 나뉜 것은 그만큼 후손 중에 큰 인물이 나왔다는 뜻이다.

내가 속한 양경공파의 시조인 양경공(良景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양경공파(良景公派)

양경공파(良景公派) 의 시조는  정희계(鄭熙啓 1348~1396)이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의 문신으로 개성부판사를 거쳐 응양위상호군을 겸임하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개국에 참여하였다.

좌명공신 1등으로 문하부참찬사팔위상장군에 올라 '계림군'에 봉해졌다.

경주 정씨 양경공파 시조 정희계 초상
경주 정씨 양경공파 시조 정희계

조선개국일등공신인 정희계는 이성계로부터 임야와 전답 170결과 노비 20명을 하사 받았다. 1결은 현재 6,813평에 해당되며 약 120만 평이다. 이때 받은 토지는 현재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신트리 사거리~정랑고개~금옥여고~서부트럭터미널~양천버스차고지~궁동터널 입구 간 신정로를 기준 양쪽 주변 토지와 매봉산, 지양산 자락 일부를 포함한 토지가 된다.

경주 정씨 양경공파 시조 정희계 묘
경주 정씨 양경공파 시조 정희계 묘

경주 정씨 양경공파 시조 정희계의 묘역의 위치는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산 150-9 매봉산, 산 150-1 지양산 자락 일대이다.

1966년 사단법인 경주정씨 양경공파종약원이 설립된 후 1983년 양경공의 4위 선조의 제단을 설단하였다. 1985년 1차 양경공 묘역 정화사업을 추진하고 2016년 2차 묘역 정화 성역화 사업을 추진 완료하였다. 매년 음력 10월 2일 묘역에서 후손 500여명이 참석하여 선조 4위를 시작으로 양경공 정희계 이하 선조 순으로 제향을 봉행한다. 묘 14기에 28위 선조를 안장하여 묘역을 조성한 경주정씨 양경공 후손들은 숭조상문의 장으로 받들어 보존하고 있다.

경주 정씨 양경공파 시조 정희계 묘역 안내도
경주 정씨 양경공파 시조 정희계 묘역 안내도

♣찾아가는 길

양천구 신정동 남부순환로 서부 트럭터미널 사거리에서 신정로를 따라 궁동터널 부천시 방향으로 600여 미터를 가다 보면 건너편 좌측 신정숲속마을 아파트 입구에 묘역 표지석이 있다. 아파트 진입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묘역이 위치하고 있다.

 

경주 정씨 양경공파 시조 정희계 묘역 위치 지도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산 150-9)
경주 정씨 양경공파 시조 정희계 묘역 위치 지도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산 150-9)

※조선 태조 이성계로부터 사패받은 토지는 1960년대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이후 정부 정책에 따른 도시개발과 택지로 수용되었다. 현재는 67,000평 가량이 남아 경주 정씨 양경공파종약원 소유로 관리되고 있다.

 

◆양경공파의 인물들

*정승조(鄭承祖)

(정희계의 손자)

김종직의 문인으로 성종 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감찰을 거처 연산군 때 검열을 재직하였으나 무오사화 때 스승이 사사되고 본인은 곽산에 유배되었다. 그 후 다시는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정발(鄭撥)

정발 장군 동상

 

양경공파 6대손인 정발(鄭撥)은 25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 해남현감과 거제현령 등을 거쳐 임진왜란 석달 전 부산진 첨사로 부임했다. 왜군이 25만 대군과 병선 4만여 척을 이끌고 부산진으로 쳐들어 왔을 때, 그는 성문을 닫아건 뒤 진두지휘하며 결사항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어려움에 닥치자 백병전에 돌입하여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발의 용전 사실은 전쟁기간 중에는 조정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왜군으로부터 부산진에서 정발의 분전으로 곤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정은 그에게 병조판서를 추증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현재, 정발 장군의 동상은 부산시 초량동에 세워져 있다.

 

*정흔(鄭昕)

(정발의 아들)

정흔은 정발의 아들로서 사량만호(萬戶)가 되어 왜군을 섬멸하여 전라수사에 승진되었으며, 정선현감을 역임했다. 또한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도 공을 세워 호위대장에 올랐다.

 

*정호(鄭浩)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돌격대장이 되어 당포해전과 노량해전에서 공적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경주 정씨(慶州鄭氏) 현대인물

*비(본명: 정지훈): 가수

가수 비의 모습
가수 비 (본명: 정지훈)

*정준호: 배우

*정동성: 전 체육부장관

*정정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정 승: 전 식약처장

*정형식: 일양약품 회장

 

경주 정씨(慶州鄭氏) 항렬표

항렬이란?

같은 성씨 안에서 상하의 차례를 분명히 하기 위해 만든 서열이다.

항렬은 문중에서 족보를 편찬할 때 일정한 대수의 항렬자(行列字)와 그 용법을 정해 놓아 후손들이 이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관례이다.

경주 정씨 항렬표
경주 정씨 항렬표

내가 속한 양경공파의 항렬표만 따로 확대 게재해 본다.

경주 정씨 양경공파 항렬표
경주 정씨 양경공파 항렬표

내가 72세인 "직"이고, 아버지는 "택", 할아버지는 "호", 증조할아버지는 "지"가 되겠다.

아래로 아들이 "원"이나 "광", 손자가 "배"나 "채", 증손자가 "석"이나 "일"이 된다.

 

요즘은 항렬에 따라 돌림자를 쓰지는 않지만, 자신의 항렬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

최소한 위로 3항렬, 아래로 3항렬은 알아야 절대 같은 성씨 안에서 상하를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아쉽다.

그건 아마도 양경공파의 시조인 양경공 할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미흡해서 일거다.

좀 더 상세하게 첨부해 본다.

▣정희계

1348년 3월 18일 개경 북안동에서 출생했다. 1369년 진사문과에 합격하고 공민왕의 총애를 받아 근시로 대호군이 되었으며 우왕 때 최영(1316~1388)의 막하에 들어가 서북면 도순문을 거쳐 밀직사가 되고 1382년 밀직상의가 되었다. 1383년 김화 전투에 참전하여 왜구와 싸웠으며 1388년 8월 추성좌리공신 봉익대부 밀직사사 상호군을 거쳐 판자혜부사가 되고 1390년 이성계를 해치려는 이초 윤이의 옥에 연루되어 안변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1392년 판개성부사에 오르고 문하평리 겸 응양위 상호군으로 이해 7월 배극염(1325~1392), 조준(1346~1405), 정도전(1342~1398), 남은(1354~1398) 등 52명과 함께 이성계를 왕위에 추대 조선개국에 공헌하여 순충분의좌명개국1등공신 참찬문하부사팔위상장군으로 계림군에 봉하였다. 시호는 양경(良景)이다. 부인은 정경부인 서원염씨로 영문하부사 곡성부원군 염제신(1304~1382)의 딸이며 외조는 도첨의정승 예천부원군 안동 권한공(?~1349)이다.

계배는 문하좌시중 영산부원군 영산 신귀의 딸이며 외조는 찬성사 신천 강윤충(?~1359)이다. 자녀는 3남 3녀를 두었고, 큰 아들은 증 이조판서 길상, 둘째 아들은 이조판서 문간공 효상, 셋째 아들은 충청병사 설상이며, 사위는 중추원부사 우계 이만, 장령 현풍 곽덕연, 풍저창승 전주 최도일이며, 외손녀 사위는 공소공 영순군 부(1444~1470)이다.

 

*

지금까지 나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경주 정씨(慶州鄭氏)이며, 파(派)는 양경공파(良景公派)다.

양경공파(良景公派) 72세손.

그중에 내가 있다.

 

그리고 또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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