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건강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시인의 詩를 읽으며

by 휴식맨 2023. 1. 29.
반응형

추운 겨울밤의 풍경
추운 겨울밤의 풍경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지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1979. 창작과 비평사)

 

몹시도 추운 한 주가 지나고 있다.

정말 이렇게도 우리나라가 추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맹추위다.

영하 18도, 체감 온도 영하 23도. 우리나라에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기상 수치가 이제는 조금 익숙해지고 있다.

춥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나만 생각한다.

내 가족만 생각한다.

아직도 함박눈이 내리면 웃음이 나고 뛰어나가 놀 생각을 한다.

오늘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를 읽었다.

마음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시 속의 '너'는 나였다.

행복에 취해, 기쁨에 취해 언제나 웃는 나였다.

주위를 보지 않고 오직 나와 가족만을 생각하는 나였다.

추위가 몰아칠 때 그 추위에 떨 이웃은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못하는 나에게, 詩는 말했다.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
주위를 돌아보면 언제나 슬픔이 있고, 불행이 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자.

더 이상 모른 채 말자.

삶 속에 공존하는 슬픔과 불행을 직시하자.

그리고 손 내미는 존재가 되자.

추위를 녹일 온기, 존재의 따스함을 나누는 그런 나이길...

 

다시 詩를 읽는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호승 시인 프로필
정호승 시인 프로필(출처: 나무위키)

정호승 시인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로 데뷔했다.

1979년 '슬픔이 기쁨에게'를 출간하였고, 슬픔이 담겨있는 시문을 짓는다고 하여서 문학계에서는 '슬픔의 시인'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

1976년 反詩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한국 사회의 그늘진 면과 분단의 현실 그리고 산업화 등으로 변해가는 것을 토대로 이를 달래는 시문을 써 왔으며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따스함을 주는 시문을 지어내기도 하였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