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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

1월의 시 모음/ 이채, 목필균, 오세영, 배귀선, 문정희, 박인걸, 안재동, 이외수

by 휴식맨 202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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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가슴에 1월이 오면

- 이채

멋진 중년 남자

시작이라는 말은
내일의 희망을 주고
처음이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요

 

두려움 없이
용기를 갖고 꿈을 키울 때
그대, 중년들이여!
꿈이 있는 당신은 늙지 않습니다

 

뜻이 있어도 펼치지 아니하면
문은 열리지 아니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아니하면
길은 가지 않습니다

 

책이 있어도 읽지 아니하면
무지를 면치 못하고
뜰이 있어도 가꾸지 아니하면
꽃은 피지 않겠지요

 

부지런한 사람에겐 하루해가 짧아도
게으른 사람에겐 긴 하루가 지루해
생각은 있어도 실천이 없다면
애당초 없는 생각과 무엇이 다를까요

 

다시 돌아가
처음으로 돌아가
그대, 중년들이여!
'이 나이에 뭘 하겠어'라는
포기의 말은 하지 않기로 해요

 

 

1월
- 목필균

1월의 탄생화

새해가 밝았다
1월이 열렸다
아직 창밖에는 겨울인데
가슴에 봄빛이 들어선다

 

나이 먹는다는 것이
연륜이 그어진다는 것이
주름살 늘어난다는 것이
세월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이
모두 바람이다

 

그래도
1월은 희망이라는 것
허물 벗고 새로 태어나겠다는
다짐이 살아 있는 달

 

그렇게 살 수 있는 1월은
축복이다

 

 

1월
- 오세영

1월을 기다리는 여자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캠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게다
아직 틔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일월은
- 배귀선

1월의 석양

날 저무는 뜨락에 앉아
사라진 날들을 그리워말자

 

설레이던 영혼의 젊은 날은
열두 달 바람의 끝을 잡고
별이 되었으니
그 별과 만나는 날
한바탕 지난꿈 이야기하자

 

일월은
축복 속에 새로운 다짐을 싹 틔우고
눈부신 비상을 꿈꾸며 푸른 문을 연다
새로운 하늘을 연다

 

우리가 가야 할 길에
폭우와 해일이 밀려와도
허물 벗고 새로이 태어나는
소리 없는 함성이다
뜨거운 새벽이다

 

 

1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

1월에 꿈꾸는 여자

인연이 만날 땐 꽃으로 피었다가
인연이 헤어질 땐 낙엽으로 저물지요
오는 사람은 석 달 열흘 오더라도
가는 사람은 하루아침에 가더이다

 

진달래 아득하고 철새도 떠나버린
이 풍진세상, 앙상한 나뭇가지
새하얀 눈이 내리면
인생 구만리 하늘에서 땅으로
수많은 인연이 머물다 간 자리마다
하얗게 피어나는 눈꽃, 눈꽃송이

 

덮어주는 저 온기는 사랑의 가슴이요
쌓여가는 저 무게는 그리움의 몸짓이라
오, 당신과 내가
어느 세월
어느 바람으로, 또 만날지 누가 알리오

 

만나고 헤어지는
인법의 굴레 속에서도, 부디
당신과 나의 아름다운 인연의 향기
처음과 끝이 같았으면 좋겠네

 

그때, 눈꽃 송이 뜨락에
고운 발자국 하나씩 남기기로 해요

 

 

정월 日記
- 문정희

어머니 사랑을 상징하는 카네이션

비로소 우리들의 침묵이
거짓임을 알았다
매일 저녁 그대가 만취하여
돌아오는 이유도

 

왜 詩가 암호처럼 어려워야 하며
신문은 조석없이 휴지가 돼버리는가를

 

사랑하는 어머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애정은
이 어두움과 배고픔을 참는 일이 아니고
그대 품에 온몸으로 쓰러지는 일인가

 

식어버린 가슴들 부끄러이 깨워
바람 키우는 숲이 되는 일인가
단 두 개를 못 가져서
소중한 목숨

 

소처럼 굴레 쓰고는
그 목숨의 비밀을 실천할 수 없어
허리 부러진
슬픈 어머니

 

흐르고 흐르면 큰 江이 된다는
그 평범한 물이나 될까.

 

 

1월
- 박인걸

스타트 라인

삼백 육십 오리의 출발선에서
이미 호각은 울렸다.

힘차게 달리는 사람과
천천히 걷는 사람과
이제 첫 걸음을 떼는 틈에서
나도 이미 뛰고 있다.

출발이 빠르다고
먼저 도착하는 것도 아니고
걸음이 더디다고
꼴찌를 하는 것도 아니다
먼저 피는 꽃이 일찍 시들고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기도 하다.

머나 먼 미로(迷路)에
네비게이션 없이 가는 나그네
절망의 숲을 통과한 수
메마른 대지를 터벅거리다
그 지루한 날들을 견디며
컴컴한 밤길이 두려워도
밤하늘의 별 빛을 따라
새 아침의 그날을 맞아야 한다.

마음은 이미 확정 되었고
의지는 쇠보다 단단하다.

태양은 활짝 웃고
언 나무들도 기지개를 편다.
창공을 나는 새들과 함께
몸은 종이처럼 가볍다.

 

 

1월의 해와 하늘
- 안재동

1월의 하늘

수십 억 년쯤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세월
날마다 변함없이 뜨고 지는 해
해는 똑같은 해인데
12월에 떠오르는 해는
낡아 보이고
1월에 떠오르는 해는
새로워 보인다

 

사랑과 미움
적과 동지
아름다움과 추함
빠름과 느림
배부름과 배고픔
편안함과 불편함
강인함과 나약함

 

본질은 같으나
느낌에 따라 달라 보이는 그 무엇들
세상에 너무 많은

 

1월 어느 날의 청명한 하늘
12월 어느 날에 청명했던 
바로 그 하늘이 아닌.

 

 

1월
- 이외수

눈 위의 늑대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 있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한밤중에 바람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몸부림치고
절망의 수풀들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망명지 아무리 아픈 진실도
아직 꽃이 되지 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해빙기는 어디쯤에 있을까
얼음 밑으로 소리죽여 흐르는 불면의 강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시간은 날카로운 파편으로 추억을 살해한다
모래바람 서걱거리는 황무지 얼마나 더 걸어야
내가 심은 감성의 낱말들 해맑은 풀꽃으로 피어날까

 

오랜 폭설 끝에 하늘은 이마를 드러내고 나무들 결빙된 햇빛의 미립자를 털어내며 일어선다
백색의 풍경 속으로 날아가는 새 한마리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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